싫어하는 음식

저는 두부를 못 먹습니다.

두부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고 말겠어요.

사람들이 왜 두부를 안 먹느냐고 자꾸 물어보면, 그냥 "두부 먹으면 죽어요" 이렇게 대답하죠.

그럼 "죽는지 안 죽는지 어떻게 알아요?" 이런 반응이 나오죠.

안 먹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겠죠?

얼마 전에 소개팅했는데 두부 못 먹는다니까 너무 깔깔거리면 비웃더라고요.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세상에 두부를 안 먹는 사람도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실 줄 압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론 두부를 안 먹는 사람이 셋 있습니다.

지도교수가 되기 전에 학교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방학이고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메뉴가 하나밖에 없었죠. 바로 마파두부덮밥!

그런데 그 분이 두부를 다 걷어내고 밥만 드시는 겁니다.
다른 한 분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까지 세상에서 세 명이 두부를 못 먹습니다.

여러분들은 못 드시는 음식이 있나요?

지렁이, 석회석, 지네 이런 거 말고요.

어쨋든 전 두부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어요.

by 처녀자리 | 2009/08/14 22:04 | 해방터 | 트랙백 | 덧글(6)

민자(民資)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민자(民資)는 킹콩이라고.

킹콩을 우리에 가둬 두면 볼거리가 되지만

우리에서 풀려난 킹콩은 사람을 해친다고.

오탁번의 시에도, 나희덕의 시에도

민자는 등장하지 않지만,

어쩌면 누군가 사랑하는 이름이 민자라서

민자가 누군가의 시에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오탁번의 시를 읽다가, 나희덕의 시를 읽다가

문득 생각한다.

민자는 풀려난 킹콩인가?

민자는 끊임 없이, 도로를 설계하고 철도를 제안한다.

힘을 자랑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힘을.

튼튼한 철창을 만들어야 하는걸까,

킹콩을 죽여야 하는 걸까?

민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누군가처럼,

민자를 사랑해야 하는 걸까.

by 처녀자리 | 2009/07/20 00:02 | 세상 읽기 | 트랙백 | 덧글(0)

한양법대신문과의 10년과 현재의 세상

최근 즐겨 읽는 소설은 미국인 폴 오스터의 작품들이다. 한양법대신문이 반미투쟁의 선봉에 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변두리에는 서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미국인의 전형을 그려내는 소설가 폴 오스터의 말을 빌려 한양법대신문과 나와의 관계를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는 내가 미쳤을 때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가 술에 취했을 때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이제 우리는 늘 나란히 서 있다(Leviathan, 1992).” 어쩌면 학교가 정해준 학사일정보다 더 밀접하게 대학생활 동안 함께해 왔고, 학교를 떠나 냉혹한 현실 속으로 와 있는 지금까지도 함께 쓴 우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양법대신문을 더 이상 찍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신문의 지면을 한 단 차지하고 싶어 신문의 과거를 회고해 달라는 후배들의 부탁에 응하며 신문에 실렸던 옛 글들을 돌아보니, 밀레니엄버그니 하는 것이 회자되던 시절에 쓴 국가보안법, 일본 군국주의, 미국 패권주의, 문화권력의 기회주의와 같은 문제를 다룬 글들이 생각난다. 7~8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이 국민들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지배할 기회를 노리고 있고, 요즘도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기웃거리고 있으며, 새로 당선된 미국의 흑인 대통령도 상대적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결국 팽창주의의 핏줄은 숨기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컨텐츠는 여전히 자본과 일부 계층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내 이십대를 함께했고 여전히 나란히 서 있는 법대신문이 사라진다는 사실보다 법대신문과 함께한 10년도 세상을 변하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뼈아프다.
그런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실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여전히 난 마감 직전에 기사를 송부한다는 것.

by 처녀자리 | 2008/11/30 23:35 | 세상 읽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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